[독서] 모순 - 양귀자

[독서] 모순 - 양귀자
Photo by Pawel Czerwinski / Unsplash
✒️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 모순 (양귀자)
모순 - 예스24
초판이 나온 지 벌써 15년이 흘렀지만 이 소설 『모순』은 아주 특별한 길을 걷고 있다. 그때 20대였던 독자들은 지금 결혼을 하고 30대가 되어서도 가끔씩 『모순』을 꺼내 다시 읽는다고 했다. 다시 읽을 때마다 전에는 몰랐던 소설 속 행간의 의미를 깨우치거나…
  • 한줄평: 왜 20년이 지난 지금도 베스트셀러에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책. (5/5)

들어가며,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모순'이라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제목이 마음에 강렬하게 와닿았다.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모순'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삶 속에서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야 할까? 나 또한 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는 요즘,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 읽어보게 되었다.

이 소설은 스물 다섯 살의 여성 '안진진'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안진진'은 매일 시장에서 양말을 팔며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 평소에 행방불명이었다가 가끔씩 집에 나타나는 아버지 그리고 조폭 보스가 꿈인 남동생과 함께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간다.
또한 그녀에게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 두 명의 남자 친구 (?)가 있다. 큰 계획 없이 낭만에 빠져 사는 사진 작가 김장우와 매사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살아가는 나영규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일란성 쌍둥이지만, 성공한 남편과 자식들과 함께 유복한 삶을 보내고 있는, 사뭇 어머니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이모도 등장한다.

어머니와 이모, 아버지와 이모부, 김장우와 나영규 등 이들의 대조적인 삶 사이에서 안진진이 느끼는 '모순'과, 그녀가 그것을 삶에 어떠한 자세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이다.

소설을 읽으며 기억에 남았던 문구들을 중심으로 내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책을 읽으며,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그리고 뒤에 더 이상 이을 말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이십 대란 나이는 무언가에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양감 있는 인생. 요즘 나에게도 참 어려운 주제이다. 나름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돌이켜보면 내 삶에 무엇이 남았는지 후회와 공허함이 밀려오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그저 노력과 의지가 부족해서였을까? 아님 내 자신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일까? '안진진'은 인생의 양감을 채우기 위해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추가해보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내 인생에 있어 양감을 채우기 위한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나의 인생의 부피를 늘릴 수 있는 것일까?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속으로 많이 뜨끔했던 문장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난과 역경에 대해서는 때로 지나치게 쉽게 판단하고, 그럴듯한 충고를 건네곤 한다. 하지만 막상 내게 주어진 불행 앞에서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 또한 하나의 '모순'인 것일까?

나의 인생에 있어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존재였다. 나라는 개체는 이다지도 나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서 꼭 부끄러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깨달음,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그랬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나는 내 삶에 졸렬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싶다. 내 삶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큰 노력 없이 그저 삶을 흘러 가는 대로 내버려두지만은 않았을까. 심지어 내 삶의 방향키를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준 적은 없었을까?

위 문장을 읽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아래 대목이 떠올랐다.

✒️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 데미안 (헤르만 헤세)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목표는 무엇이며,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삶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 문득 묻고 싶어졌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빛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우리 주변의 인간관계를 꿰뚫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소한 상처는 끝까지 기억하면서도, 정작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도움을 준 소중한 사람들의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성취를 마치 내 능력만으로 이룬 것처럼 가볍게 치부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의 숨겨진 비밀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몹시 불행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ooo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ooo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 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의 삶 속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존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부럽기만 하고 흠이 없어 보이는 삶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불행과 고민이 숨겨져 있다. 반대로, 우리는 종종 눈 앞에 닥친 불행만을 바라보고, 그 이면에 숨겨진 행복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곤 한다.

"불행 끝에 행복이 온다"거나 "너만 불행한 것이 아니다"와 같은 위로를 건네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저마다의 모순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이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살아간다면, 결국 삶의 중요한 다른 큰 부분을 놓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 속에도 참 많은 모순이 존재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자유롭고 싶은 마음과 어딘가에 소속되어 안정되고 싶은 마음,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싶은 욕심과 내 삶을 안정되게 꾸리고 싶은 마음 등. 서로 모순되는 감정과 생각들이 늘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모순은 내 삶의 일부이기에,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안에 담긴 모순마저도 내 삶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이며, 내 인생에 온 마음과 생애를 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마치며,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다.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의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감사합니다. 😊

Read more

[논문 리뷰] Evaluating Very Long-Term Conversational Memory of LLM Agents

[논문 리뷰] Evaluating Very Long-Term Conversational Memory of LLM Agents

들어가며 이번 시간에는 Evaluating Very Long-Term Conversational Memory of LLM Agents 논문에 대해 살펴봅니다. 최근에 ChatGPT를 필두로 사람과 LLM 간의 대화가 활발해지면서, LLM Agent가 사용자와 그동안 했던 대화를 기억(Memory)하고 답변에 적재적소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데이터셋은 대화 세션의 길이가 충분히 길지 않아, 긴

By Yongwoo Song
[독서 메모]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창조하는 길에 대하여> - 니체

[독서 메모]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창조하는 길에 대하여> - 니체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프리드리히 니체 | 페이지2북스- 교보ebook“그대들의 희망이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되게 하라” 철학자들의 철학자 니체가 전하는 삶의 지혜 *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 적으로 살아가고 있다.”_질 들뢰즈 * “이 책은 철학과 문학, 예언이 일체를 이룬 예술작품이다.”_칼 야스퍼스 * “우리의 질문은 니체를

By Yongwoo Song
[독서] 당신이 너무 바쁘다는 착각 - 스즈키 유

[독서] 당신이 너무 바쁘다는 착각 - 스즈키 유

✒️지혜의 9할은 시간에 대해 현명해지는 것이다. - 시어도어 루즈벨트당신이 너무 바쁘다는 착각 | 스즈키 유 저자, 하진수 번역 | 길벗- 교보ebook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사람이 되는 법**베스트셀러 저널리스트 스즈키 유 신작**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것은 인간의 아주 오래된 욕망이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인생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시간을

By Yongwoo Song
[논문 리뷰] Beyond Retrieval: Embracing Compressive Memory in Real-World Long-Term Conversations

[논문 리뷰] Beyond Retrieval: Embracing Compressive Memory in Real-World Long-Term Conversations

이번 시간에는 Beyond Retrieval: Embracing Compressive Memory in Real-World Long-Term Conversations 논문을 소개합니다. 최근에 AI가 사용자와 그동안 나누었던 대화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과거와 취향 등을 기억하고, 이를 활용하여 답변할 수 있는 개인화 AI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화 기록을 적재 적소로 정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memory 기술이 필요한데요, 본 논문에서는

By Yongwoo Song